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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서야 진짜 범인이 밝혀지다. 영화 <살인의 추억>

by noolook 2023. 1.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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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성 연쇄 살인 사건을 모티브로 만든 영화

1986년 9월 15일 새벽 4시쯤 수원시 화서동 주택가 골목에서 귀가하던 주부 이모 씨가 괴한에게 습격당했다. 범인은 흉기로 그녀의 목을 찔러 살해했고 이어 인근 논두렁으로 끌고 가 성폭행 후 사체를 유기했다. 경찰은 대대적인 수사에 나섰고 무려 200여 명의 용의자를 검거했으나 끝내 진범을 잡지 못했다. 그리고 2006년 4월 2일 공소시효가 만료됨으로써 영구 미제 사건으로 남게 되었다. 일명 '화성연쇄살인사건' 또는 '개구리소년 실종사건'으로 불리는 이 사건은 대한민국 최악의 장기 미제 사건으로 꼽힌다. 1991년 대구 개구리소년 실종사건 직후 세간의 이목이 집중되자 정부는 특별수사본부를 설치하여 재수사에 착수했다. 이때 유력한 용의자로 지목된 사람이 있었는데 놀랍게도 현재 교도소에 수감 중인 이춘재였다. 1994년 1월 처제를 강간 및 살해한 혐의로 무기징역을 선고받고 복역 중이었는데 DNA 검사 결과 일치 판정이 나온 것이다. 이로 인해 한때 국민 모두가 충격에 빠지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풀리지 않는 의문점이 남아있다. 우선 범행 수법이 매우 잔인하다는 점이다. 피해자 대다수가 스타킹이나 양말 등으로 결박당한 채 발견되었는데 저항 흔적조차 없었다. 또 하나는 목격자가 없다는 점이다. 유일한 단서는 현장 주변에서 발견된 체모였는데 국과수 감정 결과 혈액형 B형 남성의 것으로 밝혀졌다. 다만 이것만으로는 부족하다. 만약 정말 동일인물이라면 어째서 30년 동안 잡히지 않았던 걸까? 혹시라도 억울한 누명을 쓴 건 아닐까? 진실 여부를 떠나 부디 모든 의혹이 말끔히 해소되길 바랄 뿐이다.

범인을 잡기 위한 박두만의 집념과 열정

봉준호 감독의 2003년작 <살인의 추억>은 화성 연쇄살인사건을 모티브로 제작되었다. 1986년부터 1991년까지 무려 10차례에 걸쳐 일어난 끔찍한 살인사건이었지만 범인 검거에 실패했고 끝내 미제로 남았다. 실화를 바탕으로 했다는 점에서 개봉 당시 화제를 모았고 흥행에도 성공했다. 주요 등장인물로는 송강호, 김상경, 김뢰하, 송재호, 변희봉 등이 출연했으며 박두만 형사역을 맡은 송강호의 연기는 단연 압권이었다. 줄거리는 대략 이렇다. 1980년대 시골 마을에서 젊은 여인이 무참히 살해된다. 그리고 연이어 비슷한 수법의 범행이 벌어진다. 수사반장 서태윤(김상경)은 직감적으로 동일범의 소행임을 알아채고 특별수사본부를 설치한다. 용의자 박현규(박해일)를 유력한 용의자로 지목하지만 증거 불충분으로 풀려난다. 1년 뒤 또다시 피해자가 발생하자 태윤은 현규를 체포하려 하지만 번번이 실패한다. 그러는 사이 희생자는 늘어가고 주민들은 공포에 떤다. 마침내 결정적인 단서를 확보한 태윤은 현규를 추적하게 되면서 이야기는 진행된다.

진짜 범인은 사건을 축소하려 했던 당시의 시대상이었다.

2003년 개봉한 봉준호 감독의 영화 <살인의 추억>은 화성 연쇄살인사건을 모티브로 제작되었다. 1986년부터 1991년까지 무려 10차례에 걸쳐 일어난 끔찍한 살인사건인데  당시에 범인 검거에 실패했다. 공소시효가 만료되어 미스터리로 남을 뻔했지만 최근에 진범이 밝혀져 다시 한번 화제가 되었었다. 실화를 바탕으로 했다는 점에서 충격적이고 소름 끼치는 작품이지만 동시에 사회적 메시지를 담고 있다는 점에서 시사하는 바가 크다. 우선 무능한 경찰 조직을 꼬집고 있다. 수사 과정에서 보여준 무능함과 무책임함은 보는 이로 하여금 분노를 자아내게 만든다. 또 하나 눈여겨볼 점은 피해자 가족들의 아픔이다. 용의자 몽타주 공개 후 주변인들로부터 쏟아지는 비난과 조롱 그리고 멸시 어린 시선은 견디기 힘들 정도로 고통스럽다. 심지어 유력한 용의자조차 제대로 처벌받지 못하고 풀려나니 억울함과 분노는 배가 된다. 마지막으로 시대상을 반영한다는 점이다. 80년대는 군사정권 하에 인권 유린과 고문이 횡행하던 시기였다. 그로 인해 무고한 시민들이 희생당했고 국민들은 공포에 떨어야 했다. 따라서 형사 박두만(송강호)이 외치는 "밥은 먹고 다니냐?"라는 대사는 단순한 인사치레가 아니었다. 밥 먹을 여유조차 없이 쫓기는 신세였기에 안부를 묻는다는 건 곧 생사 여부를 확인하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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